
자립준비청년의 유기 공포와 무의식적 복수심: 최면상담을 통한 내면 탐색 사례
우리 사회는 보호 시설을 떠나 홀로 서기를 시작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성공적인 자립’이라는 무거운 결과만을 기대하곤 합니다. 하지만 수석 상담사로서 제가 현장에서 마주한 이들에게 정작 시급한 것은 경제적 토대보다, 무의식 깊은 곳에 패인 ‘유기 공포’와 ‘존재에 대한 부정’을 치유하는 일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 드릴 20대 청년 지훈(가명)님의 사례는 단순한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을 넘어선 특별한 심리적 저항을 다룹니다. 그것은 자신을 버린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고통 속에 방치하는, 무의식의 처절한 선택에 관한 기록입니다.
세상과 단절된 고시원 방, 그 속에 숨겨진 원망의 칼날
지훈님은 시설을 퇴소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낡은 고시원에서 세상과 소통을 단절한 채 지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취업 준비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제가 상담을 통해 확인한 본질적인 문제는 “나를 버린 부모가 평온하게 사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렬한 원망이었습니다.
지훈님 역시 과거를 잊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내가 행복해지면 그들의 죄가 면죄부를 받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치며, 그를 스스로 만들어낸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이 겪는 심리적 외상의 구조적 분석
지훈님과 같은 사례에서 나타나는 고통은 여러 층위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됩니다.
1.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스트레스 반응
성장기 동안 지속적인 심리적 외상에 노출될 경우, 인체의 스트레스 조절 시스템인 HPA 축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소한 자극에도 신체가 비상사태로 반응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무기력감이나 신체 통증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배경이 됩니다.
2.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핵심 신념
반복적인 유기 경험은 ‘나는 버려져 마땅한 존재’라는 파괴적인 핵심 신념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신념은 자존감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타인이 건네는 따뜻한 호의조차 동정이나 공격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이게 만드는 심리적 트리거로 작용합니다.
3. 사회환경적 고립과 심리적 역전
경제적 불안정과 지지 체계의 부재는 이들이 과거의 상처에 더욱 집착하게 만드는 환경적 요인이 됩니다. 기댈 곳 없는 현실 속에서 ‘부모에 대한 원망’을 유일한 삶의 동력으로 삼게 되는 비극적인 심리적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4. 최면 심리 상담이 제안하는 새로운 접근
일반적인 조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고집스러운 고통 이면에는 반드시 무의식의 강력한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진행하는 최면상담과 EFT(감정자유기법)는 내담자가 왜 그토록 아픈 기억을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지 그 이면의 목적을 탐색합니다. 이를 통해 내담자가 스스로 변화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상담사의 핵심 역할입니다.
가슴속에 맺힌 서늘한 응어리: 그 기원을 찾아가는 첫 번째 여정
지훈님(가명)이 처음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공간 전체가 그의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찼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자립준비청년으로서 그가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고초를 담담히 털어놓았지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의 눈빛은 이내 차가운 얼음처럼 굳어버리곤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성급한 해결책이나 위로를 건네기보다, 이 공간만큼은 그의 상처가 온전히 안전하게 머물 수 있도록 깊은 수용의 태도로 라포를 형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지훈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가야 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건넨 이 한마디에 그는 비로소 짧은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본격적인 탐색에 앞서, 저희는 지훈님을 괴롭히는 핵심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세상과 부모를 향해 날 선 칼날 같은 분노를 품고 있었지만, 정작 그 칼날에 가장 깊은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임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망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명치가 꽉 막힌 듯한 답답함과 신체가 경직되는 긴장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것이 현재의 상황을 넘어선 아주 오래된 무의식의 신호임을 직감하고, 지훈님을 깊은 이완 상태로 안내하며 최면적 접근을 시작했습니다.
태아기 기억의 재구성: “나는 축복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지훈님은 현재의 무기력함에서 시작하여 학창 시절 홀로 식어버린 밥을 먹던 외로움을 지나, 마침내 어머니의 뱃속이라는 태아기의 기억에 도달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당시의 감각을 속삭였습니다.
“너무 차가워요… 엄마가 나를 원하지 않아요. 이 아이만 없었다면 내 인생이 이렇지 않았을 텐데, 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져요.”
그것은 어머니가 임신 중 느꼈던 양가감정, 즉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의 삶이 파괴된다는 저항감이 태아였던 지훈님에게 고스란히 전이된 순간이었습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는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낙인이 그의 무의식에 깊게 각인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상담사로서 깊은 연민과 함께 전략적인 고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 원초적인 거부감이 그가 평생을 짊어지고 온 분노와 자기혐오의 뿌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회기를 마무리하며 미래를 상상하게 했을 때, 그는 여전히 8점 이상의 높은 불편감을 호소했습니다. 무의식은 이미 원인을 보여주었지만, 지훈님의 내면 한구석에서는 이 고통을 내려놓기를 거부하는 강력한 힘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치유의 문턱을 가로막는 처절한 복수심과 ‘용서의 역전’
두 번째 상담에서 저희는 본격적으로 그 차가운 기억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훈님의 손날과 미간을 가만히 두드리며 태아기 아이의 슬픔을 위로하고, “비록 나는 원치 않는 아이였다는 생각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지만, 이런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라는 EFT 확언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감정 수치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훈님은 상담실 밖에서의 실천조차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내해 드린 EFT 감정 노트를 작성해 보셨느냐는 저의 질문에 그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적으려고 하면 화가 나서 못하겠어요. 제가 왜 이런 노력을 해야 하죠?”
바로 이 지점이 핵심이었습니다. 지훈님을 괴롭히던 통제 불능의 분노는, 사실 그가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처절한 ‘복수’의 수단이었습니다. 제가 “이제 행복해져도 괜찮다”고 제안하거나 복수의 감정을 인정하는 EFT를 시도하려 할 때마다 그의 무의식은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행복해지면, 저를 쓰레기처럼 버린 그 인간들은 죄책감도 없이 편하게 살 거 아닌가요? 제가 이렇게 비참하고 망가진 채로 살아야, 그들이 저를 볼 때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뼈저리게 후회할 것 아닙니까!”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용서의 역전’ 현상입니다. 가해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삶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고 있는 무의식의 비극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무의식의 안전장치: 고통이라는 이름의 연결고리
이러한 양상은 비단 자립준비청년뿐만 아니라, 부모의 만족을 위해 혹독한 학업 스케줄을 견디는 강남 대치동의 아이들에게서도 자주 발견됩니다. 자신을 망가뜨림으로써 부모에게 고통을 주려는 무의식적인 저항인 셈입니다.
상담 중 저는 지훈님에게 직설적이지만 따뜻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훈님, 본인이 계속 아프고 비참한 것이 정말 그분들에게 복수가 되고 있나요? 아니면 그분들이 지훈님의 삶을 여전히 지배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건가요?” 지훈님은 순간 멈칫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이내 입술을 깨물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잘 살면 그들을 용서하는 꼴이 되잖아요. 전 그게 죽기보다 싫어요.”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가해자인 부모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고통을 내려놓는 순간 부모와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린다는 근원적인 고립감이, 오히려 그를 고통에 매달리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훈님의 무의식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노’라는 무거운 갑옷을 입었지만, 그 갑옷이 너무 무거워 이제는 숨조차 쉬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요”, “상담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 역시, ‘더 깊이 들어가면 내 복수심(유일한 무기)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 무의식이 가동한 안전장치였습니다.
마지막 상담: 변화의 문턱에서 멈춰 선 발걸음
마지막 회기, 지훈님은 평소보다 다소 늦게 상담실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욱 굳어 있었고, 대화 중에도 자꾸만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에서 내면의 격렬한 갈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다시 한번 미래 점검을 시도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훈님, 한 달 뒤에 당신의 삶이 평온해진 장면을 자유롭게 그려보세요.”
지훈님은 한참을 무거운 침묵 속에 머물더니 입을 뗐습니다.
“그려지지 않아요. 제가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 낯설고 가식적으로 느껴져요. 그냥… 이렇게 고통 속에 사는 게 오히려 저다운 것 같아요.”
그의 감정 수치는 여전히 7~8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훈님에게 변화는 아직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상담 중단을 암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상담사님, 사실 제가 아직은 이 마음을 버릴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선생님 말씀이 다 맞는 건 알겠는데, 제 마음이 도저히 따라가질 못하네요.”
지훈님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보다, 부모를 향한 ‘복수심’이라는 익숙한 지옥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는 상처를 직면하고 넘어설 내면의 힘보다, 고통을 통해 누군가를 원망하며 존재를 증명하려는 힘이 아직은 더 컸던 것입니다. 차라리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이 부모와의 유일한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고립감보다 낫다고 판단한 무의식의 처절한 선택이었습니다.
상담사로서의 소회: 문은 언제나 안에서 열리는 법입니다
저는 지훈님의 선택을 겸허히 존중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지훈님, 오늘의 중단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지훈님의 무의식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방어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훈님의 삶이 누군가를 향한 복수의 도구가 아닌, 오롯이 지훈님만을 위한 소중한 선물로 느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문을 두드려 주세요. 그 문은 항상 안에서 열리는 법이니까요.”
상담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다시 한번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억압된 감정의 해소 없이는 근본적인 내면의 변화가 불가능하며, 치유의 시기 또한 철저히 내담자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험난한 과정입니다. 때로는 지훈님처럼 변화의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멈춤조차 성장의 일부이며, 스스로를 돌보려는 아주 작은 시도들이 모여 결국 삶의 궤적을 바꿉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중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으로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블로그 내 다른 상담 사례들을 천천히 살펴보시며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준비가 되었을 때, 언제든 이곳에서 함께할 것입니다.
📩 [상담 및 예약 안내]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답변 또는 상담료 확인 및 예약을 위해서는 아래 주소를 참고해 주세요. https://litt.ly/mindful_jun